“샤넬백은 버클 부분 나사 모양이 일자나 별표인 것이 특징입니다. 혹시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있다면 가품일 가능성이 높아요.” (라올스 명품감정원 박호성 원장)

이달 8일 방문한 서울 강남구 라올스 본사는 흡사 명품 병행수입업체의 물류창고를 방불케 했다. 입구부터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족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고가 브랜드의 제품 200여개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라올스에서 감정중인 샤넬 백. 동그라미 친 부분의 나사 모양이 십자가면 가품일 가능성이 높다. / 이현승 기자
 
라올스에서 감정중인 샤넬 백. 동그라미 친 부분의 나사 모양이 십자가면 가품일 가능성이 높다. / 이현승 기자

 

한 켠에서 전문 감정사가 돋보기와 비슷하게 생긴 소형 광현미경을 들고 샤넬의 인기 제품 플랩백 탑핸들을 뜯어보고 있었다. 버클 부분 나사 모양, 가방 내부에 붙어있는 로고 글씨체나 간격 등 20개가 넘는 요소가 정품의 특성과 일치해야 진품 판정을 내린다.

라올스는 지난 2008년 설립된 국내 최장수 명품 감정업체다. 명품 유통 사업을 준비하던 박호성 원장이 브랜드 직수입이 안되는 폐쇄적인 구조 탓에 가품 유통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해 감정 전문 회사를 차렸다. 라올스 소속 감정사 6명의 하루 감정건수는 200~300건이다.

라올스는 롯데·신세계(258,000원 ▼ 2,000 -0.77%)·CJ(88,800원 ▼ 200 -0.22%), 중고나라, 크림 등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 기업은 물론 검찰, 경찰, 국세청, 지방자치단체와도 협업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범죄, 탈세와 연루돼 압류한 고가 제품들을 라올스에 맡기면 진가품 여부를 감정하고, 진품으로 확인되면 공매 시세가를 매긴다. 직접 전자 공매도 진행한다.

국내 명품 시장은 작년 기준 16조원으로 전년 대비 5% 성장해 세계 7위다. 온라인을 통한 중고거래가 늘면서 진가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무신사가 판매한 수입 디자이너 브랜드 의류를 네이버(NAVER(309,500원 ▼ 6,000 -1.9%)) 크림이 가품이라고 판정하자 무신사가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갈등은 진행중이다.

박호성 라올스 원장. / 이현승 기자
 
박호성 라올스 원장. / 이현승 기자

 

명품 감정 베테랑인 박 원장에게 최근 발견되는 가품의 특징은 무엇이고 어떻게 유통 되는지 물어봤다. 다음은 박 원장과의 일문일답.

-라올스의 감정 의뢰인은 누군가

“법원, 검찰, 국세청, 관세청, 지자체 등 국가기관과 롯데·신세계·CJ·현대·GS 등 유통 대기업, 스타트업 30여개, 빈티지 명품 매장 50개 이상이다.”

-자체 검수 인력을 두고 있는 회사들도 있을텐데.

“라올스는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고가 명품 브랜드 감정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네이버 크림은 고가 명품은 라올스에 감정을 맡기고 나이키, 아디다스 등은 자체 검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가품에 특징이 있다면.

“여전히 99%는 중국에서 만들어지는데, 퀄리티가 엄청 좋아졌다. 중국산 가품은 대량생산 되는 경우와 소량으로 주문 제작 되는 경우가 있다. 후자는 기술자 4~5명이 조(組)를 꾸려 제작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상당히 좋다.”

-진가품 감정도 어렵겠다. 어떻게 감정하는지 설명해달라.

“제품 무게, 가죽의 패턴, 질감, 냄새, 실밥 꼬임 방식 등 20여개 감정 포인트가 있다. 가령 수준이 낮은 가품은 한번 들어보면 감정이 끝난다. 진품은 제품 무게 오차가 최대 30g 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정품의 특성과 일치하면 광현미경으로 지퍼 부분, 내부 로고와 제품번호 글씨체를 면밀히 살펴본다. 가품은 로고를 찍는 기계가 정교하지 않기 때문에 글씨체가 고르지 않고 정품과 차이가 난다. ”

프라다 가방 안의 똑딱이 버튼. 가품은 정품보다 색이 녹슬어 있고 글자를 둘러싼 점의 간격이 가깝다. / 라올스 제공
 
프라다 가방 안의 똑딱이 버튼. 가품은 정품보다 색이 녹슬어 있고 글자를 둘러싼 점의 간격이 가깝다. / 라올스 제공
프라다 가방 스트랩 연결고리 내 로고. 가품은 P와 R 윗부분이 끊겨 있어 정품과 차이가 난다. / 라올스 제공
 
프라다 가방 스트랩 연결고리 내 로고. 가품은 P와 R 윗부분이 끊겨 있어 정품과 차이가 난다. / 라올스 제공

 

-일반 소비자들도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나.

“사실 어렵다. 요즘은 샤넬 본사에서 가품을 걸러내기 위해 가방 내부에 심는 스티커인 홀로그램까지도 정교하게 잘 만든다. 오픈마켓에 정품이라고 올려도 웬만하면 모를 수 있다. 전문가들도 최소 5년 이상 공부를 해야 감정을 할 수 있다.”

-같은 제품을 두고 감정업체들 간 다른 소견을 내는 경우도 있다.

“감정 노하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가 제작, 유통한 진품이어도 제조 지역, 시기에 따라 품질이 크게 다른 경우도 있다. 라올스는 오랜 노하우가 축적돼 있어 명품 브랜드에서도 감정 능력을 인정 받고 있다. 예를 들어 A 브랜드의 진품을 타사에서는 가품으로 판정한 반면 라올스는 진품으로 감정한 사례가 다수 있었다.

최근 구찌, 보테가베네타, 생로랑, 발렌시아가, 알렉산더맥퀸 등과 정식 유통사만 보유한 제품 이력 관리 기계(RFID)를 단독 공급 받기로 했다. 이 기계로 제품 내 식별 코드를 찍으면 별도 감정 없이 진가품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

-회사에 전문 감정사는 몇 명 있고 어떤 자격을 가지고 있나.

“나를 포함해 6명이다. 국내에 공인된 명품 감정 자격증은 없다. 라올스 감정사들은 중고 명품 판매 매장에서 최소 10년 이상 근무한 분들이다. 브랜드 제품 특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연도별, 생산국가별,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별 세부 특징이 학습 돼 있어야 한다.

구찌, 프라다 등 특정 브랜드만 15~20년 취급한 병행수입업체 종사자들의 자문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가품 판매자들에게 사기를 당하면 상표법 위반 죄로 처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진가품 감정과 관련한 노하우가 상당하다. 이런 분들이 국내에 50명 정도 있고, 감정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40~50명 정도다.”

-감정이 어려운 제품이나 브랜드가 있다면.

“중저가 제품이다. 고가 시계나 가방은 비싼 부자재를 쓰지만 중저가는 진가품이 같은 가죽을 쓰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 본사에서도 감정을 못할 정도다.”

-다른 감정업체와 라올스의 차별점은.

" 200만개의 감정 데이터다. 라올스는 똑같은 제품 1000개 감정이 들어오면 샘플로 몇개만 감정하는 게 아니라 전부 한다. 한 제품 당 사진을 20컷 이상 찍어 데이터베이스화 해둔다. 과거 데이터가 있어야 변화하는 진가품 트렌드를 파악할수 있고 정확한 감정이 가능하다.

상세 사진을 남겨두면 감정 소견서의 신뢰도가 올라가는 효과도 있다. 감정은 A제품으로 받고, 가품을 사서 판매하는 사람들고 있다. 그럼 가품을 진품으로 믿고 사서 판매한 사람은 졸지에 상표법 위반자가 된다. 라올스는 제품의 고유번호, 상세샷을 데이터화 하기 때문에 제품 바꿔치기가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