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시계 이야기 (3) ◆

수백 년 전부터 공방을 지켜온 스위스 시계장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시간의 오차를 줄이는 것이었다. 기계식 시계의 경우 중력의 영향으로 불가피하게 시간의 오차가 생기기 마련. 이에 오차 범위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수많은 장인이 일생을 받쳤다.

브레게(Breguet)시계의 창시자인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1747~1823)는 스위스 시계의 아버지로 불린다. 중력에 의한 시간 오차를 최소화하는 장치인 '투르비용'을 발명해 모든 시계 장인들의 꿈을 실현해줬기 때문. 물론 경쟁자들 사이에선 엄청난 질투와 시기를 받았지만 그가 만든 '투르비용'은 우주의 원리를 거스른, 시계의 바벨탑 같은 도전이자 승리였다.

회오리바람이란 뜻의 '투르비용' 장치는 시계 안에서 1분마다 일정하게 회전해 손목 움직임이나 위치에 관계없이 중력 영향을 균일하게 받도록 설계됐다. 워낙 정교한 기술이라 시계에 투르비용 장치가 들어있느냐 없느냐가 고급시계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시계의 천재였던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1801년 '투르비용'를 만들기 이전에도 두 개의 태엽과 진자를 가진 퍼페추얼 워치를 선보였고, 시계충격방지 장치인 파라슈트를 개발하는 등 연이은 혁신적인 기술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갔다.

당시 유럽 최고 상류층에서 지금으로 치자면 얼리 어답터(유행을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들)들이 그의 시계에 열광했고 너도나도 주문하면서 브레게는 유럽 상류층의 스타로 각광받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카롤린 뮤라(나폴레옹의 여동생) 등 역사적 인물들이 브레게의 최고 고객이었다.

브레게와 프랑스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

평소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사모해온 한 귀족이 브레게를 찾아와 왕비에게 선물하기 위해 돈은 얼마가 들어도 관계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복잡하고,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것.

시계를 만드는 와중에 왕비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주문자 역시 죽게 되는 우여곡절 속에서 그 시계는 44년이 걸려 완성됐고 그동안 예루살렘 박물관에 소장돼 오다가 2005년 도난당했다.

44년에 걸쳐 만들어졌으나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그 시계는 지난해 복원(레플리카) 제품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1999년 브레게 브랜드를 인수한 스와치그룹의 니콜라스 G 하이에크 회장이 복원제품을 만들게 해 44개월에 걸쳐 완성됐다.

브레게를 대표하는 시계 중에는 '그랜드 컴플리케이션-1808 BR(사진)'가 있다. 브레게만의 독창적인 개발품인 '투르비용'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1801년 포켓 워치로 제작된 투르비용 워치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제작했다. 로즈골드 케이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침은 투르비용 위에 위치하고, 엔진 턴드 골드 커버가 투르비용과 다이얼을 감싸고 있다. 직경 40.50㎜며, 4.7캐럿의 706개 다이아몬드가 세팅돼 있다. 국내에는 단 1개가 들어와 있고, 가격은 3억3000만원을 호가한다.

브레게는 디지털시계 등장과 함께 스위스 시계가 위기에 처했던 1980년대 한 번 사라졌던 브랜드다. 이를 스와치그룹이 인수해 브레게라는 탁월한 시계 천재와 마리 앙투아네트 간 역사적 에피소드 등을 내세워 부활시켰다. 고급시계의 경쟁력이 기술력보다 역사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얼마나 잘 풀어가느냐는 마케팅력에 달려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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