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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족보] ② Jeweler To Kings, King Of Jewelers, 사랑한다면 ‘까르띠에’처럼…

출처 :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2-02-27 13:54






 
 
일찍이 영국 왕이 ‘왕의 보석상, 보석상 중의 왕’이라 찬사를 보낸 까르띠에. 보석상 숙련공의 이름이 전 세계 여성들의 흠모의 대상이자 사랑의 징표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대규모 짝퉁 사건 혹은 대형 로비 사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브랜드.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가 꼭 한 번 들러 스타일을 챙겨보는 브랜드. 서로 분위기는 다르지만 브랜드는 같다. 16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까르띠에를 두고 한 패션 전문가는 “짝퉁 홍수 속에 빛나는 원조”라 표현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리 짝퉁 기술이 좋아 오리지널과 구별하기 어렵다 해도 까르띠에만큼은 범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관광에 나선 이들 중엔 1만원 남짓한 돈을 주고 짝퉁 까르띠에 시계를 구입하기도 한다. 한 여행사 마케팅 담당은 “지인에게 선물로 건네기도 재미있고 까르띠에 한 번 차보라며 덕담 나누기도 좋은 아이템”이라고 귀띔했다. 과연 까르띠에는 어떻게 빛나는 원조이자 범접할 수 없는 흠모의 대상이 됐을까.
Point 1. 빠른 해외 진출
1847년 프랑스 파리의 한 보석상. 이곳의 주인 아돌프 파카르로가 숙련공이던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와 마주 앉았다. 이름만 보고도 짐작 가능한 상황, ‘까르띠에(Cartier)’의 역사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된다.
주인이 고용하고 있던 숙련공에게 보석상을 넘긴 것이다. 한 해 전부터 자신의 이니셜 L과 C를 이용해 장인(匠人) 마크를 등록한 까르띠에에게 보석상 인수는 든든한 사업 밑천이자 시발점이었다. 이후 1899년, 까르띠에는 새로운 세기를 맞아 보금자리를 한국의 청담동쯤 되는 뤼 드 라 페(rue de la Paix) 13번지로 옮긴다. 그러곤 시선을 해외로 돌렸다. 세 아들을 둔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우선 첫째 루이 조제프에게 파리를, 둘째 피에르 카미으에게 뉴욕을, 셋째 자크 테오뒬에게 런던을 맡겨 해외로 시장을 넓혀 나갔다. 이때부터 까르띠에의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까르띠에는 3대를 거치며 세계 최고의 보석상으로 자리매김한다. 당시 웨일스의 왕자에게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이라 칭송받더니 왕자의 대관식(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에 쓸 27개의 티아라(Tiara) 제작을 맡아 명성을 높였다. 2년 후 에드워드 7세는 까르띠에를 ‘영국 왕실의 보석상’으로 임명한다. 이후 스페인·포르투갈·러시아·시암(태국)·그리스·세르비아·벨기에·루마니아·이집트·알바니아 왕실과 오를레앙 일가·모나코 공국으로부터 영국에서와 비슷한 자격을 부여받았다.
뉴욕 5번가 부티크
Point 2. 까르띠에의 심벌, 트리니티(Trinity)
오늘날의 까르띠에를 만든 인물이라 손꼽히는 이는 창업자의 손자 루이 까르띠에. 그가 1924년 친구이자 시인인 장 콕토(Jean Cocteau)에게 선물한 반지는 지금까지 까르띠에의 심벌이자 뮤즈로 자리 잡고 있다. 화이트 골드, 옐로 골드, 핑크 골드 등 세 가지 색의 골드가 소용돌이치듯 어우러진 트리니티는 2009년 새로운 트리니티가 등장해 세기를 넘어 비상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거치는 과정도 화제다. 최초의 콘셉트는 하나의 단어로만 존재한다. 단어를 중심으로 무수한 스케치와 회의, 수정이 반복되며 레이아웃이 완성되고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간다. 여러 색의 왁스로 기초 형태를 제작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후 석회주물, 연마 과정, 광택 과정, 양각 세공 과정, 비늘 세공, 브러싱 공정, 보석의 세팅 과정 등을 거치게 된다. 물론 검사와 수정은 기본. 까르띠에의 이 모든 작업이 자연광을 이용한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것도 여타 브랜드와 다른 특징이다.
Point 3. 최고의 전통이 계승된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까르띠에 시계는 창업자의 아들 루이 까르띠에가 시작한 사업이다. 시계 디자인과 제조 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루이는 까르띠에만의 보석 디자인, 세공을 응용해 벽시계, 탁상시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시계 전문가들과 공동 작업하며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던 까르띠에는 시계 전문가 모리스 코우(Maurice Couet)와 함께 ‘미스터리 클락’(까르띠에의 최고급 보석장식 시계)의 성능을 개발, 향상시켰다. 그런가 하면 1907년 에드몬드 예거(Edmond Jaeger)와의 공동 작업으로 특허권을 획득한 손목시계 버클은 시계 제조 역사에 커다란 공헌을 하기도 했다. 까르띠에의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는 대부분 왕실, 귀족, 대부호를 위한 것이었고 그런 까닭에 최고의 디자이너, 시계 기술자, 감정사, 세공 전문가, 광택 전문가들의 손과 최상의 소재가 사용됐다. 이러한 엄격한 소재 선택과 완벽한 세공, 제조 기술은 21세기에 들어와 여러 라인의 시계로 전통이 계승되며 주목받고 있다.
그 중 새롭게 선보인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는 ‘파란 공’이란 뜻의 야심작이다. 우주가 탄생한 순간부터 공간의 팽창과 시간의 연속을 상징하는 발롱 블루는 고전과 미래지향의 두 성향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다.
Point 4. 럭셔리 브랜드의 총아, 리치몬트 그룹
바쉐론 콘스탄틴, 피아제, 예거 르쿨트르, 반클리프 아펠…. 눈이 번쩍 뜨이는 명품 브랜드가 한 식구라면 어떨까. 가상이 아니라 진실이다. 스위스의 명품 그룹 리치몬트(Richemont)의 산하 브랜드를 살펴보면 까르띠에를 발견할 수 있다. 본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자회사 렘브란트 그룹의 럭셔리 부문이 1988년 독립하며 거대한 명품 그룹으로 재탄생했다. 리치몬트를 설립한 이는 고 앤톤 루퍼트 회장. 1988년 까르띠에와 보메 앤 메르시에, 피아제, 상하이 탕, 1996년 스위스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 2000년 시계 브랜드 IWC, 아 랑에 운트 죄네, 예거 르쿨트르, 2001년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아펠을 인수했다.
2009년에는 랄프로렌과 합작회사를 설립하며 패션브랜드 시계를 생산하고 있다. 1985년부터 창업주의 아들 요한 루퍼트 회장이 그룹 경영을 맡아 잇따른 인수·합병에 성공하며 리치몬트를 세계 3대 럭셔리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지난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9% 증가한 57억9000만달러. 순익은 10% 늘어난 9억7500만달러를 기록했다. 요한 루퍼트 회장은 “산하 브랜드들이 우호적인 무역환경의 도움을 받아 주얼리와 시계, 액세서리 부문에서 포지션을 강화했다”며 “높은 실적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사업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재형 기자 ssalo@mk.co.kr│자료 = 까르띠에 코리아(02-518-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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